이신칭의의 은혜

본문: 로마서 5장 1–11절

크리스천은 무엇이 다릅니까?

예수님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은 도대체 무엇이 다릅니까?

믿지 않는 사람도 좋은 집을 원하고 좋은 차를 원합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자녀가 잘되기를 바라고, 안정적인 생활을 원하고, 넉넉한 재정을 바랍니다. 교회도 더 큰 건물을 세우고 더 많은 사람이 모이기를 바랍니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우리도 힘들어합니다. 실패하면 낙심하고, 병들면 두렵고, 앞날이 불확실하면 불안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 삶에 어떤 차이를 가져옵니까?

이신칭의라는 위대한 진리를 믿고,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누리는 은혜는 무엇입니까? 무엇이 우리를 세상과 구별되는 삶으로 이끕니까?

로마서 3–4장은 사람이 자신의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는 복음의 진리를 설명합니다. 이어서 5장은 그렇게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어떤 은혜를 누리는지 보여 줍니다.

오늘 우리는 그 은혜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과의 화평을 누립니다

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하나님과 화평을 누린다는 것은 어떤 상태입니까?

먼저 의롭다 하심을 받기 전,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어떠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로마서 3장 9절은 말씀합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또한 19절은 말씀합니다.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모든 사람이 죄 아래 있으며 하나님의 심판 앞에 서 있습니다. 열심히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열심 자체가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닙니다. 악을 열심히 행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을 해치면서 자기 이익을 열심히 추구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가와 함께,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았는가입니다.

격투기에도 규칙이 있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싸워도 규칙을 어기면 실격당할 수 있습니다.

이런 가상의 이야기를 생각해 보십시오.

지진과 화재로 건물이 무너질 것 같은 상황에서 한 남자가 집 안의 중요한 가방을 챙겨 뛰쳐나왔습니다. 옷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채 가방을 품에 안고 달렸습니다. 마침내 안전한 곳에 도착했습니다.

가방 안에는 집문서와 통장, 그동안 수고하여 모은 재산에 관한 서류들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것을 지켰다고 안도했습니다.

그런데 먼지가 걷히자 아내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는 자신과 재산을 지키려고 달려 나오면서 아내의 안전은 돌아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가 열심히 달렸다는 사실만으로 그 선택이 옳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무엇을 사랑하며 누구를 위해 달렸는지가 중요합니다.

우리의 열심도 마찬가지입니다. 열심히 살았다는 사실만으로 죄 문제가 해결되거나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를 의롭다 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으므로, 우리는 정죄와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원받습니다.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관계가 화목한 관계로 바뀐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과의 화평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와 평강을 베푸시는 관계입니다

구약의 제사장 축복문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베푸시는 평강을 아름답게 보여 줍니다.

민수기 6장 24–26절입니다.

2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25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하나님께서 얼굴을 비추시고, 은혜를 베푸시고, 평강을 주십니다. 하나님과 화평하게 된 우리는 그분의 은혜로운 돌보심을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잘못을 숨기고 있을 때에는 누군가 부르면 두려울 수 있습니다.

“왜 나를 부르지? 내 잘못이 드러난 것인가?”

요한복음 3장 20절은 말씀합니다.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죄는 우리를 숨게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자신을 감추고 피하게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통해 용서받고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잘못했을 때에도 도망하는 대신 회개하며 돌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것은 은혜를 베푸시고, 우리를 돌이키시며, 거룩한 삶으로 이끄시기 위함입니다. 때로는 책망과 교정도 받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우리를 버리시는 행동이 아니라 자녀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돌보심입니다.

물론 화평하게 된 성도도 두려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때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주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를 용서하시고 바로잡아 주십시오. 저를 사랑하시는 주님께 돌아갑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관계, 이것이 우리가 누리는 은혜입니다.

현재의 은혜 안에서 미래의 영광을 소망합니다

2절은 우리가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받아들여진 은혜의 자리에 들어왔고, 지금 그 안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현재에는 은혜 안에 서 있고, 미래에는 하나님께서 완성하실 구원의 영광을 소망합니다.

주님께서는 다시 오셔서 죄와 죽음의 지배를 끝내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 영광에 참여할 것을 기다립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화평은 오늘의 형편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원한 생명과 영광에 이르게 하실 약속까지 품고 있습니다.

오늘의 삶은 불확실할 수 있지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은 신실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며 즐거워합니다.

2. 환난 중에도 즐거워합니다

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바울은 “이뿐 아니라”라고 말합니다. 장차 올 영광을 바라며 즐거워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지금 겪는 환난 중에도 즐거워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과 화평하게 된 사람에게도 환난은 찾아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가 달라졌기 때문에 환난을 바라보는 눈도 달라집니다.

환난을 만났다고 해서 하나님께 버림받았다고 결론 내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가운데서도 우리를 붙드시고 빚으실 것을 믿습니다.

그 믿음으로 인내하고, 인내하는 가운데 믿음이 검증되고 성숙하며, 하나님을 향한 소망이 깊어집니다.

환난은 우리의 연약함을 드러냅니다. 잠언 24장 10절은 말씀합니다.

“네가 만일 환난 날에 낙담하면 네 힘이 미약함을 보임이니라”

그때 우리는 자신의 힘만으로 살 수 없음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붙드시는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됩니다.

믿음의 인내가 사업이나 학업의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결과가 뜻대로 되지 않는 때에도 하나님을 붙들고 소망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환난을 해석합니다

히브리서 12장은 고난을 견디는 성도에게 하나님께서 그들을 자녀로 대하신다는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 히브리서 12:6

그 목적도 분명히 말씀합니다.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 히브리서 12:10

당시에는 괴롭지만, 그 훈련을 통해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잠언 17장 3절도 말씀합니다.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

환난에는 여러 원인이 있습니다. 모든 고난을 특정한 죄에 대한 징계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가운데서도 우리의 마음을 다듬으시고 믿음을 성숙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인내를 배우고, 교만을 내려놓으며, 절제와 겸손을 배웁니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웁니다.

그리고 자신의 연약함 가운데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실제적인지 경험합니다.

“내가 무너지려 할 때에도 주님께서 나를 붙드셨구나. 내가 길을 알지 못할 때에도 주님께서 나와 함께하셨구나.”

그 경험 가운데 하나님을 더욱 소망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을 때 불확실함을 견딜 수 있습니다

제가 군대에 있을 때 자대 배치를 기다리던 일이 생각납니다.

전우들은 자신이 어디로 갈지 몰라 두려워했습니다. 힘겨운 곳에 배치될까 봐 걱정했습니다. 스무 살, 스물한 살의 청년들이니 충분히 그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곳으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마음에 주셔서 평안했습니다.

옆에 있던 전우가 물었습니다.

“너는 안 두렵냐? 나는 너무 두렵다.”

제가 평안하게 있는 모습을 보면서 그 전우는 놀라워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을 의지하며 누리는 평안이 얼마나 귀한 은혜인지 느꼈습니다.

이것은 믿는 사람은 언제나 편한 곳에 배치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확신이 불확실한 상황을 바라보는 제 마음을 붙들어 주셨다는 간증입니다. 힘겨운 곳에서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습니다.

환난 중의 기쁨도 그렇습니다. 슬픔과 두려움이 전혀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다시 소망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를 그렇게 인내하고 소망하게 합니까?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3. 십자가 사랑이 소망을 견고하게 합니다

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우리의 소망이 헛되지 않은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하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는 그 사랑을 우리 마음에 부어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의지하며, 그 사랑 안에서 살아가게 하십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 사랑이 어떤 사랑인지 설명합니다.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강해지고 경건해진 다음에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아직 연약하고 경건하지 않은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8절은 더욱 분명히 말씀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우리의 형편은 변하고 감정도 변합니다. 평안한 날이 있고, 기도조차 잘 나오지 않는 날이 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오늘의 형편만으로 판단하지 마십시오.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는 사실이 그 질문에 답합니다.

이미 화목하게 하신 하나님께서 더욱 구원하십니다

9–10절은 말씀합니다.

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여기서 “더욱”이라는 말씀을 붙드십시오.

원수였을 때도 아들의 죽음으로 우리를 화목하게 하셨다면, 이제 화목하게 된 우리를 더욱 구원하시지 않겠습니까?

우리를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께서는 살아나셨습니다. 살아 계신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우리의 소망은 자신의 능력을 평가한 결과가 아닙니다. 우리를 위해 아들을 내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살아 계신 그리스도께 근거합니다.

그 사랑이 환난 중에도 우리를 붙듭니다. 인내하게 하고, 다시 소망하게 하며,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게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힘이 약해질 때에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의지할 수 있습니다.

결론: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무엇이 다릅니까?

우리도 어려움을 겪고, 두려워하고, 눈물을 흘립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사람들입니다. 지금 그 은혜 안에 서 있고, 장차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것을 소망합니다.

환난이 왔다고 하나님의 사랑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원수였을 때도 화목하게 하신 하나님께서, 이제 화목하게 된 우리를 더욱 구원하실 것입니다.

지금 힘겨운 시간을 지나고 계십니까? 자신의 연약함 때문에 낙심하고 계십니까?

그 모습 그대로 주님께 나아가십시오.

“주님, 저는 연약합니다. 그러나 저를 위해 죽으신 주님의 사랑을 의지합니다. 저를 붙드시고, 이 시간에도 인내하며 주님을 소망하게 하옵소서.”

그리고 환난을 겪는 지체의 곁에 서 주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우리가 서로의 짐을 함께 지고, 함께 기도하며 이 길을 걸어갑시다.

11절은 말씀합니다.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우리는 영광을 소망하며 즐거워합니다. 환난 중에도 하나님의 사랑을 의지하여 즐거워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를 받아 주시고 붙드시는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합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성도 여러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십시오. 십자가로 확증된 사랑을 붙드십시오.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부어 주시는 그 사랑 안에 거하십시오.

우리를 화목하게 하신 주님께서 마침내 약속하신 영광에 이르게 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누리는 이신칭의의 은혜입니다.